범패의기원
 
 
 
  불교 전래와 더불어 이어진 한국의 범패는 진감국사 이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삼국유사의 월명사(月明師) 도솔가에서 엿볼 수 있고, 또한 일본승 자각대사(慈覺大師) 원인(圓仁:794-864)의 {입당구법순례행기 (入唐求法巡禮行記)}에서 그는 적산에서 불리는 범패가 당풍(唐風), 향풍(鄕風;신라풍), 일본풍 古風(고풍) (당 이전에 한반도를 걸쳐 일본으로 건너간 소리) 이렇게 세 종류의 범패가 불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, 이로 미루어 범패가 오래전부터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고 삼국의 불교는 각종 문화유산에서 그 발달 정도를 찾아 볼 수 있다. 고려시대의 불교는 왕실의 보호 아래 국교적 융성을 보게 되었는데, 역대 왕들이 연등회(燃燈會)를 행하고 백좌도량(白座道場)을 왕궁에 설치하였으며, 특히 문종은 21년(1067년) 정월 흥국사(興國寺)에서 5주야 동안 연등회를 특설하였고, 의종(1147-1170) 또한 취각군사 16인을 좌우에 세우고 취라군사 24인을 뒤에 세워 봉은사(奉恩寺) 연등회에 참석하였던 사실 등을 볼 때, 범패 또한 상당히 성행하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.

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의 정치이념으로 말미암아 범패는 정치적으로 쇠퇴되었지만 세종13년(1431년) 8월에 범패가 행하여졌음을 볼 수 있다. 문헌으로는 {신간책보범음집(新刊冊補梵音集)}(1713), 백파(白坡)스님의 {작법귀감(作法龜鑑)}(1828), {범음종보(梵音宗譜)}(1478) 등이 있다. 영조24년(1748년) 범패의 대가 대휘(大煇)화상이 {범음집(梵音集)}을 저술하였다. 또한 {범음족파(梵音族派)}에 많은 수의 범패승의 이름이 기록된 것을 볼 때 민간신앙의 주체로서 범패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. 그러나 1911년 6월 사찰령과 더불어 각 본말사법이 제정되자 조선승려의 범패와 작법이 금지되었고, 의식의 일부분이 간소화되었다. 1931년 안진호(安震湖)스님이 불교의식을 모은 {석문의범(釋門儀範)}을 펴냈고, 이 예법은 의식을 하는 스님들의 필독서가 되었다. 해방 이후 불교의 권공의식이 점차 쇠퇴하여 갔지만 영남, 호남, 경기를 중심으로 이어졌던 범음이 무형문화재 제50호 영산재 지정과 더불어 전승되어가고 있다.